
김해 양동리 고분군
金海 良洞里 古墳群
경상남도 김해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454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기원전 2세기대∼기원 5세기대
- 지정 연도
- 2004년
- 소재지
- 김해시, 경상남도—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등
- 좌표
- 35.222553, 128.812279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기원전 2세기부터 5세기까지 조성된, 김해 양동리 고분군이에요.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5,1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답니다. 가야가 활발한 해상활동으로 번성한 해양왕국이었음을 보여줘요. 2세기 후반∼4세기가 가야철의 전성기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요. 철시장 상실이 가야 쇠퇴의 원인이 됐다는 해석까지 가능한, 낙동강 하류 가야 사회를 밝혀주는 정말 귀중한 고분군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김해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