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사진
국보6유적·탑통일신라시대 8세기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충청북도 충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국보6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통일신라시대 8세기
지정 연도
1962
소재지
충주시, 충청북도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좌표
37.015889, 127.86663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통일신라시대 석탑이에요. 당시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 중앙부에 있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불러요.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 각 층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놨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탑에 생기를 주고 있어요.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1917년 보수할 때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일제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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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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