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국보 제37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통일신라시대
- 지정 연도
- 1962년
- 소재지
- 경주시, 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0
- 좌표
- 35.832186, 129.24239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통일신라 신문왕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이에요.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세웠는데, 경주 감은사지·고선사지 삼층석탑보다 작은 규모랍니다. 기단 각 면의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었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점에서 달라진 양식을 보여줘요. 효소왕 1년(692)에 세워졌고,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 뒤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을 추가로 넣어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해요. 1942년 해체수리 때 금동 사리함과 불상 2구가 발견됐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경주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통일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이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추가하여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져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