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고구려비
忠州 高句麗碑
충청북도 충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국보 제205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고구려시대
- 지정 연도
- 1981년
- 소재지
- 충주시, 충청북도— 충청북도 충주시 감노로 2319 (중앙탑면, 충주고구려비전시관)
- 좌표
- 37.028087, 127.84850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의 돌비예요. 1979년 충주에서 발견된 이 비는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차지한 후 세운 기념비로 여겨져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 4면에 글을 새겼는데, 만주의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한 형태랍니다. 비문에는 고구려 관직명과 '신라토내' 같은 당시 용어들이 남아 있어서,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줘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견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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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