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충청남도 보령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19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통일신라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보령시, 충청남도—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번지
- 좌표
- 36.344391, 126.656298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때 창건한 오합사가 이 절로, 낭혜화상이 번창시켜 '성주사'란 이름을 내려받았다고 전해요.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 지금은 터만 남았고, 금당터로 보이는 곳 앞에 서 있는데 뒤로는 층수만 다를 뿐 솜씨가 비슷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답니다. 2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렸고, 탑신을 괴는 돌을 따로 끼웠어요. 지붕돌은 밑면에 4단 받침을 두고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경쾌하답니다. 1층 몸돌 아래 괴임돌을 둔 방식은 고려 석탑으로 이어지는 새 형식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돼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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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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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