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대문 사진
보물177건축물조선시대 중기

사직단 대문

社稷壇 大門

서울특별시 종로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77
분류
건축물
제작시대
조선시대 중기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종로구,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사직동 1-38번지
좌표
37.575702, 126.96863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사(社)는 땅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모셔 나라와 백성의 편안·풍년을 비는 사직단의 정문이에요.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 불탔고, 숙종 46년(1720) 다시 세운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답니다. 1962년 서울시 도시계획으로 지금 자리보다 14m 앞쪽에 있었어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새부리 모양 부재로 기둥 위 보를 받쳤답니다. 소박하면서도 튼튼한 짜임새로, 나라 제사를 지내던 문의 격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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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사직단이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또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 문은 사직단의 정문으로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새부리 모양의 부재를 이용해 기둥 위에서 보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사직단 정문의 법식과 넉넉한 느낌을 주는 건축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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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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