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회덕 동춘당
大田 懷德 同春堂
대전광역시 대덕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209호
- 분류
- 건축물
- 제작시대
- 조선 효종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대덕구, 대전광역시— 대전 대덕구 동춘당로 80 (송촌동)
- 좌표
- 36.364856, 127.44141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조선 효종 때 대사헌·이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별당, 대전 회덕 동춘당이에요. 현판은 송준길 사후 6년 뒤인 숙종 4년(1678) 우암 송시열이 썼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에 오른쪽 4칸은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이에요. 대청 삼면과 온돌방 사이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별당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 된답니다. 굴뚝을 따로 세우지 않고 초석 높이로 연기 구멍만 뚫어, 편안함을 경계한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표현했어요. 2012~2013년 보수 때 1617년 상량 기록이 발견됐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대덕구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이다. ‘동춘’은 ‘늘 봄과 같다.’는 뜻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평면으로는 총 6칸 중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이고 왼쪽 2칸은 온돌방이다. 대청의 앞면·옆면·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차별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하여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받침은 4각형의 키가 높은 돌을 사용했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2012~2013년 지붕 보수과정에서 종도리 하부면에서 1617년 상량과 1649년 이축내용이, 또한 종도리 장여 상부면에서 1709년 중수상량과 경과 등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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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