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
淸道 雲門寺 圓鷹國師碑
경상북도 청도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316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청도군, 경상북도—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길 264(운문면, 운문사)
- 좌표
- 35.660896, 128.960904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고려 중기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한, 청도 운문사의 탑비예요. 국사는 일찍 출가해 송나라에서 화엄과 천태교관을 배워 귀국했답니다. 1109년 선사가 되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했어요.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어지고, 세 쪽으로 잘렸던 비몸만 복원된 상태랍니다. 앞면엔 국사의 행적, 뒷면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가 글을 지었다는 비문 내용으로, 국사 입적 이듬해인 1145년 이후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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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운문사에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1051∼114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인종 22년(1144)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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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