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충청북도 충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658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조선 태조 3년(1394)
- 지정 연도
- 1979년
- 소재지
- 충주시, 충청북도—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 좌표
- 37.130913, 127.83809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문인선사 희달이 왕명을 받아, 조선 태조 3년(1394)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를 세웠어요.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계율을 강조하고 문장·글씨에도 능했던 승려랍니다. 22세에 승과 급제, 태조 1년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했어요. 태조가 '보각국사' 시호와 '정혜원융' 탑명을 내렸답니다.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어요. 조선시대를 통틀어 돋보이는 서예적 품격을 지닌 탑비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충주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希達)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