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사진
보물1804서적·기록물조선시대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서울특별시 서초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804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조선시대
지정 연도
2013
소재지
서초구, 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34 (내곡동, 헌인능관리사무)
좌표
37.465396, 127.083725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변계량이 짓고 권홍이 전액을 쓴, 조선시대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예요. 1422년 세종 4년 세운 비석이랍니다. 태종 이방원의 생애와 업적을 두루 기렸어요. 임진왜란으로 귀부는 손상됐지만 이수는 원형을 잘 간직했답니다. 비문 글씨를 쓴 사람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명나라 석비 전통을 받아들인 이수양식 연구의 기준작으로, 매우 귀중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받는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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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는 1422년(세종 4년)에 세운 것이다. 태종 헌릉 신도비는 태조의 다섯 째 아들로 조선왕조 국기를 튼튼히 다졌던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李芳遠, 1367~1422년)의 생애와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비문을 새겨 세운 것이다. 비문은 태종 때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변계량(卞季良)이 지었고 전액(篆額)은 당대의 서예가 권홍(權弘, 1360~1446년)이 썼다. 다만 비문 글씨를 누가 썼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의 서예문화와 그 경향을 연구하는 데는 손색이 없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이다. 태종 헌릉 신도비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귀부(龜趺)는 손상되었지만 이수(螭首)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새롭게 명나라의 석비 전통을 받아들이는 비석의 이수양식을 연구하는 데 기준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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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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